가난을 도둑맞다.
이 책은 70년대 배경으로 쓰인 내용이지만, 2021년 현재 빈부의 격차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라 느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가난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처한 상황에 살면 된다 생각한 사람이였습니다. 하지만 믿었던 누군가에게 가난을 도둑 맞고 모든게 다 무너져 버렸는데 한사람의 인생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 이불 덮고 자던 사랑하던 사람이였습니다. 매일 매일 소소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하던 두사람이었습니다. 여자의 남자친구인 상훈이는 멕기 공장에 다녔습니다. 멕기 공장은 은반지를 감쪽같이 금반지로 만들기도 하고 백통 수저를 은수저로 만들기도 하는 마술같은 공장이었습니다. 혹시나 가짜 금반지를 만들어 진짜로 파는 그런 공장 아닌지 의심했지만 상훈이는 절대 그런일은 없다고 얘기하였고, 여자도 나중에 상훈이가 프로포즈 할 때 그 반지를 내밀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짜란 얘기 안하고 진짜처럼 잘 끼고 다녀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상훈이에게 먼저 함께 살자 제안한 사람은 여자였습니다. 여자는 상훈이에게 둘이 같이 살면 모든 관리비가 다 절약되고, 연탄도 2개 쓸거 하나쓰게 되고, 남녀가 끌어안고 자면, 한개도 반개도 줄일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함께 살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얘기 안한 게 있었는데 그건 좋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얘기는 꼭 상훈이가 먼저 해주길 바랬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컸지만 절대 먼저 얘기 안하겠다 다짐하며 언제간 할거다 믿고 있었습니다. 아침 출근 전 찌개를 끓여 상훈이에게 주었더니 상훈이는 뚜껑을 열자마자 아니꼽게 굴었습니다. 멸치에 대가리를 좀 따서 넣어주면 안되냐며 징그럽다 얘기했고, 여자는 더 보란듯이 멸치 대가리를 찾아 입속에 넣고 자근자근 씹으며 대가리에 영양분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며 눈을 흘겼습니다. 그러나 상훈이는 탓하지 않고 여자가 하는대로 찌개를 휘적이며 멸치 대가리를 찾아 먹었습니다. 둘은 깔깔 대며 웃었고 여자는 이런 일상이 행복했고 좋았습니다. 여자는 아침을 먹고 상훈이에게 도시락을 건네며 출근 시킨 후 서름질을 하였습니다. (서름질은 설거지의 방언입니다.) 여자와 상훈이가 사는 방은 작은 쪽방이었고, 그곳에 집주인이 부엌을 만들어 준다며 환기가 안되게 다 막아버려 음식냄새와 연탄가스 냄새로 숨쉬기가 힘들정도 였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이 냄새를 싫어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부모와 오빠는 이 냄새를 너무 싫어했고, 이 냄새를 맡느니 죽는게 낫다 하더니 정말로 여자만 남겨두고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복수하는 뜻에서도 이 냄새에 길들여져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옆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 여자가 데리고 온 남자가 궁금해 죽겠지만 누구 하나 선뜻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여자도 그 사실을 알지만, 먼저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상훈이 얘기를 하며 국수 대접도 할 수 있지만, 아직 상훈이에게 좋아한다는 말도 못들었는데 벌써 그런곳에 돈을 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노래를 부르며 후딱 서름질을 마치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밖은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 너무 추웠고, 사람들은 눈만 내놓고 꽁꽁 싸맨채 각자의 일터로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삽을 들고 일하러 가던 한 아주머니는 여자에게 요즘 재미 좋다 들었다며 말을 건넸고, 그 모습엔 이상하도록 색정적인걸 발산했습니다. 모든것이 얼어붙어 있는 이곳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여름의 상쾌함처럼 생기가 있었습니다. 가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가난앞에 맞서며 발랄하게 사는 사람들을 여자의 부모는 경멸했습니다. 배알도 없는 것들이 극성스럽다 치를 떨며 싫어하였고 그 모습이 싫어 같이 죽어버렸던 겁니다. 여자에게 검고 추한 주검과 가난을 남기고 말입니다. 그들이 죽기를 무릅쓰고 거부한 가난을 여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반하고 있다는 생각에 뜨거운 쾌감을 느꼈습니다. 여자가 일하는 곳은 공장이라 부르기엔 너무 작은 온돌방에 헝겊이 무더기로 쌓여있고 창가엔 미싱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인형옷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여자는 주인아줌마가 자른 천을 미싱으로 박는 일을 하였습니다. 여자는 열심히 미싱일을 배워 나중에는 유명한 일류 재봉사가 될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류 재봉사가 되어 상훈이가 만든 반지를 끼고 고백을 듣는 상상을 하니 웃음이 피식 나올만큼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 기분을 모르는 주인 아주머니는 여자 부모를 죽일년이라며 욕했습니다. 사실 주인 아주머니는 여자의 엄마 친구였고, 여자네 집이 어려울 때도 함께 대책을 논의까지 할 정도고 하나밖에 없는 친구였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지금까지 한푼도 저축한게 없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고 식료품 가게를 하나 해보라며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의 엄마는 아줌마의 말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 창피하게 어떻게 구멍가게를 하냐며 손사레를 쳤고, 수억대 자산가인 친구를 찾아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었고 그돈으로 아버지가 사무실을 얻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여자의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번씩 사무실에 전화 걸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모님이란 말이 듣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하지만 사모님다운 가락이 붙기도 전에 회사는 망했고 집까지 쫓겨났습니다. 여자의 엄마는 부자 친구를 욕했지만 돈을 갚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부자 친구는 아이들을 위해 전세집을 마련해 주었고 그렇게 가족은 그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자의 엄마는 아이들 공부를 가르쳐야 한다며 전세금을 빼서 아이들 등록금으로 사용헀습니다. 그러곤 사글세 방으로 쫓겨났습니다. 인형 만드는 공장 아주머니가 나와서 일하라고 해도 여자의 엄마는 한사코 거부했고 여자가 대신 일하러 나갔습니다. 만원씩 벌 수 있어 여자는 너무 행복했고, 가족들에게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며 함께 열심히 살자 했지만, 다른 가족들은 이 가난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죽어버렸던 겁니다. 어느날 집에 와보니 상훈이가 먼저 와있었는데 밥을 안해놓았습니다. 우리는 먼저 온 사람이 밥을 해놓기로 했는데 안하고 담배만 피고 있는 상훈이를 보니 화가났습니다. 화도 잠시뿐 얼굴을 보니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무슨일이냐 물으니 동료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그걸 보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냐며 나무랐습니다. 심시일반 얼마씩이라도 걷어 병문안을 가야 된다 하였고 아침 출근길 지금까지 모아놓은 3만원이 든 통장을 상훈이에게 건네며 동료들에게 얘기해서 함께 조금씩 모아 위로해 주라 얘기했습니다. 여자는 가난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할 도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통장을 본 여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통장에 있던 3만원이 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상훈이는 다른사람들도 다 어려운데 어떻게 돈을 달라 하냐며 본인만 전달해주었다했습니다. 여자는 도와주고는 싶었지만 이 돈을 다 쓸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이돈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어떻게 다 주고 올 수 있는지 상훈이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여자는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정도는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얼마를 내야 할지 밤새 고민한 여자와는 다르게 무심히 삼만원을 그냥 내버린 상훈이에게 기분나쁨과 불안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도 상훈이는 히죽히죽 웃었고,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자와 상훈이는 같이 살았지만 여자는 가끔 상훈이에게 신경질을 부렸고, 삼만원때문에 그렇다 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라 폐병쟁이를 완전히 잊고 편히 사는게 가끔 미워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상훈이는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가 공장에도 찾아가 보았지만 공장에도 나오지 않고 있다며 사장님은 아마 큰사고가 난거 같다 얘기했고, 여자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잠을 잘 못잤고 언젠가는 돌아올거라 확신했습니다. 매일 퇴근하며 집에 올때 집에 불이 켜져 있기를 바랬습니다.
상훈이 돌아오다.
어느 날 퇴근길 집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상훈이가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는 여자가 생각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좋은 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무 깨끗한 모습이었습니다. 여자는 상훈이가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올거만 생각했지 이렇게 훌륭한 모습으로 돌아올거란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었습니다. 여자는 침착하게 왜 안왔냐 물었고 상훈이는 친철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돈 갚으러 왔다 했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니 옷에는 대학 뱃지가 붙어 있고, 바닥엔 두툼한 책이 놓여 있었습니다. 여자는 그에게 기어이 도둑질을 했냐며 짠하게 바라보며 다가가 안기려 했는데 그는 여자를 고상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원래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대학생이였으며 아버지가 조금 별난 분이라 고생을 모르고 사는 아들이 걱정되어 고생 좀 실컷하고 돈 귀한 줄 알고 오라며 무일푼으로 내쫓았던거라 말했습니다. 여자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여자의 엄마는 부잣집 사람들은 돈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에 대해서만 말했지 가난뱅이를 장난삼아 해본다는 말은 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는 좋은 분이시고 자기도 배운게 많다며 아버지 친구분들에게 권하고 있다며 가난 체험이 유행할거란 말을 하는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어 하는 얘기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상훈이는 아버지에게 친구 얘기라며 연탄 한장을 아끼려고 남자를 집에 끌어들이는 여자가 있다 했더니 의외로 관심을 보이시더니 집에 데려다 잔심부름 시키다 쓸만하면 야학이라도 보내자 했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기회에 부끄러운 이런 생활 청산하고 몸 좀 단정히 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데리러 온다 했습니다. 여자는 너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습니다. 여자는 돈을 받아 그의 얼굴에 집어 던지고 나가라 소리쳤습니다. 그는 여자를 보고 미쳤다며 중얼거리더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갔습니다. 여자는 자기가 갖고 있는 떳떳한 가난을 잘 지켰노라 뿌듯해했습니다. 하지만 모든게 똑같은데도 어제와 같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가난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거 같습니다. 여자는 이것들을 다시 수습하거 같지도 않고 방에는 이미 가난 조차 없는거 같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상훈이에게 가난을 도둑맞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부자들에게 모든 것을 뺏겼을 때도 느끼지 못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야 비로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가난이 의미하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이 여자에게 나는 부모와 다르게 지금 이 상황을 잘 헤쳐 나가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은 어찌보면 이 여자에게 자부심 자존심이었을겁니다. 그렇게 나 자신이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그는 가난놀이로 와르르 무너뜨린겁니다. 이 여자에게 하나 남은 희망마저 앗아간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입니다. 처음엔 이 책이 얘기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해 한번 두번 세번 계속 읽어 나갔습니다, 아직도 이 내용이 가지고 있는 뜻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 여자가 가난을 도둑맞았을 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에 대한 느낌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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